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하나님은 절대 인간의 고집만은 못 꺾는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실 때는
최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드셨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위해 하시는 일만큼은
인간의 의지를 초월치 않고
반드시 그 사람의 의지와 함께 일하신다.
하나님은 절대 일방적이지 않다.
일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삭도 그냥 데려가지 않았고
주님의 수태소식도 마리아에게
주의 은혜가 임할 것인지를 먼저 물은 것이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의지를 100% 존중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알고 계신다.
욥은 너무나 힘든 고통이 계속 되니까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서
있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게 하느냐고 항의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하라 하신 것은
강제로 우리를 고문해서
그 분이 알지 못하는 것을 자백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그렇다면 왜
범죄 후 나무 뒤에 숨은 아담과 하와를 찾으셨을까.
그것은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어 잘못된 신분을 밝히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가 거부되면
누구에게나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어 죽게 하셨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도록 놔두신다.
만약에 하나님에게 강제성이 있다면 협박을 할 것이다.
사단은 우리의 생명을 죽이고 빼앗으려고 왔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를 강제로 협박해서
상대방의 의지를 꺾고 모두 다 박탈해 가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생명을 주기 위하여 오셨기에
내 스스로 그 은혜를 알고
나의 의지로 그 분을 영접하면 생명을 얻게 된다.
따라서 내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가 일치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의 고집과 의지를 꺾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이거나 강제적인 분이시라면
똑똑하고 잘난 사람을 불러 쓰시지
왜 폐인 같은 우리를 불러 쓰시는가.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움직여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을 한다.
이 기도를 보면 자기는 안하려고 작정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감동이 자기에게 강하게 와서
나를 변화 시켜 달라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런 자들에게는 절대로 응답이 없다.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지 못해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고집과 아집을 꺾고 끝까지 순종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가 방주를 다 만들 때까지는
심판을 보류하고 기회를 주며 기다린 것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의 구할 것, 필요한 것 다 아신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부족하고
영적으로 갈급한 것까지 다 아신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안타까워하며 몸부림쳐도
하나님은 강제로 그들에게
그것을 부요롭게 해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구하고 두드리고 찾을 때까지 보고 계시는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이 말은
예수님은 예수님의 의지로서 나를 예수 안에 데려 가시고
나는 나의 의지로 내 안에 예수를 모셔
하나님 안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면 몸부림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올 수가 없다.
아무리 내 살을 먹으라, 내 피를 마셔라 고 해도
내가 안 먹으려 작정하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우리 이성이 없을 때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이 정확한 때에 가장 온전하게 된다.
잊지 말자.
모든 하나님의 축복과 은사는 나의 의지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제발 하나님의 역사를 원한다면 고집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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