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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DJ의 칼럼(6) - 공해적 인간
2016.10.14
조회 1179


(김도원 화백)



[일사일언] 공해적 인간

세상은 정말 시끄러울 정도로 말이 너무 많다.
귀 기울여 들어줄 만한 말도 있지만,
듣고 있노라면 듣고 있는 내가 자존심이 상할 정도의 말도 적지 않다.
요즈음의 방송 얘기다.
정말로 말의 공해 속에 살고 있다.
이제는 조근조근 얘기하는 방송을 만나고 싶다.
아침마다 라디오에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매일 하니 종종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 역시 말에 관한 한 '공해적 인간'은 아닌지.

말을 적절하게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넘치게 해도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함량 미달의 말을 쏟아내면 채널이 돌아갈 수도 있으니
방송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365일, 매일 2시간씩 말을 하고 있는데
무슨 새로운 얘기가 샘솟듯 나오겠는가.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말과 감정을 일치시킬 수 없을 때다.
심기가 몹시 불편한데도 말은 따뜻하고 아름답게 해야 할 때,
아내와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다툼이 밤을 관통하며
'그레코로만'이라도 하듯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는
채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아침 방송을 할 때가 그렇다(절대 요즘 얘기가 아님).

애청자 사연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끼어들어
"남자니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 주면서…"
따위의 코멘트는 날리지 못하도록 창조된 인물이긴 하다.
만약 아내가 방송을 안 듣는다면
'일' 핑계를 대며 미사여구를 날려 보겠으나
아내는 기분에 관계없이 내 방송을 꼭 찾아 듣기에
가증스러워 보일 멘트를 날릴 수도 없다.

결국 집에서부터 감정을 잘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또 길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도 두루두루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들 중에 누가 애청자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사는 게 피곤하지 않은가 반문할 수 있겠으나
'수신제가(修身齊家)' 훈련 덕분인지,
좋은 음악과 함께하는 라디오 덕인지,
요즘 고요한 호수 위를 유영하듯 감정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조선일보 201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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