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8금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이'의 간절함
그대아침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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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때를 기다려도 사이를 건널 수 없는 섬도 있다.
작은 무인도들은 배편조차 없기 때문이다.
화도와 증도 사이에는 노두길이 있는데 그 길은 오직 썰물 때만 드러난다.
물이 차오르면 섬과 섬 사이 길은 사라지고 다시 '사이'만 남는다.
노두길 앞을 지나가는데 마침 그때가 왔다. 물이 빠져 섬 사이에 길이 드러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드라마 촬영지라는 표지판 앞에 도착하니
섬 안의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농가 한 채가 있을 뿐이다.
수레를 끌고 천천히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
"드라마 끝난 지가 십 년도 넘었는데, 뭐 볼 게 있다고 와”
그러고 보니 시청한 적도 없는 드라마의 촬영지를 보겠다고
할머니의 집을 불쑥 침입한 셈이었다.
못마땅한 방문임에도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게 드라마 세트장이여”라며 알려주었다.
본래 창고 자리인데 창고를 잃어 불편한 점이 많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십 년이 넘도록 낯선 이들의 갑작스러운 침입을 견디며
이곳을 지켰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얼른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새 건설된 다리로 많은 섬들에 '24시간 교통길'이 열렸다고 떠들썩하다.
하루 중 언제든 불시에 섬과 섬 사이를 건너 다른 섬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편리한 길이 열려 관광도 사업도 소득으로 연결된다고 기뻐하지만
모든 섬들이 또 섬주민들이 기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이를 존중받지 못하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아무 때나 건널 수 없기에 섬과 섬 사이에는 그리움이 흐른다.
오직 간절한 자만이 그 사이를 건널 수 있다.
때를 살피고 맞춤한 때를 기다려 그 사이를 건너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이 빠져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배가 뜨는 시간을 기다리며
날씨가 그 길을 허락해 주기를 기도하면서
사이에 그리움이 흐르고 간절함을 아는 자만이
때를 맞춰 건너올 수 있는 그런 섬이고 싶다.
*윤소희의 <여백을 채우는 사랑>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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