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릴 땐 단답형 질문을 많이 받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시작으로 “어떤 색깔이 제일 좋아?”,
“어떤 동물을 제일 좋아해?”, 그리고 “어느 계절이 제일 좋아?”까지.
나에겐 어느 것 하나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제일 좋은 거 하나만 대라는 건 지금도 너무 어렵다.
언제였던가, 십대 중반 즈음 배짱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건
계절에 대한 질문. 사춘기 소녀들끼리 돌려쓰던
돌림 노트나 롤링 페이퍼 따위에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는 질문이 있으면,
나는 늘 환절기라 썼다.
환절기. 계절이 바뀌는 시기. 한자로는 마디가 바뀌는 기간.
계절이 바뀔 때는 정말 몸도 마음도 어딘가 마디가 생겨 넘어가는 느낌이다.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
그렇게 어느 사이에 있을 땐 문득 마음이 울렁거린다.
보통은 마음이 눈치채기 전에 지나가 버리는 순간이 많지만,
계절의 사이는 그렇지 않으므로 일교차가 시작되면 마음 단속도 해야 한다.
그럴 때면 십 대 후반에 읽었던 <노인과 바다> 생각이 난다.
유명한 고전이지만 내게 남은 건 줄거리도, 감동도 아닌 단 한 줄의 문장.
‘해질녘엔 물고기들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물고기들도 그 시간은 견디기 어렵거든.’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누군가,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어디서 이런 글을 쓰고 있었구나' 하며 벅찬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환타 색으로 물든 저녁 하늘, 해가 뜨기 전 시퍼런 새벽,
먹구름이 와서 낮인지 저녁인지도 모를 때,
한없이 지속될 것만 같은 밤과 어디라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밤과 새벽의 경계.
그 시간을 견디면 정다운 일상이 찾아오건만,
반 발짝이라도 내밀어 책임질 수 없는 길을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이런 감흥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때와도 겹친다.
그나저나 시간을 좀 수월하게 건너게 해주는 건 없을까.
*이후의 <무풍생활, 시골에서 보낸 시절>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