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맛을 알았다. 아무 맛 없다고 타박했던 그 맛을 이순에야 알았다.
땅심 먹고 자란 식물 중 가장 자연적인 그 맛을 내 입이 알기까지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편안하게 입안 가득 수분을 채워주다 천천히 제 몸을 우려내 주재료에 어우러져 드는 착한 맛,
누구나 만나지 못해도 늘 마음 언저리를 채우는 사람이 있듯,
어떤 맛에서도 일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어련무던한 맛.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조용히 베풀면서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 같은 무 맛을 안다는 건
인생의 오감을 느낌으로 마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증거리라.
군것질거리가 궁했던 시절,
가끔 어머니는 통무를 얇게 썰어 데친 후 밀가루 반죽을 입혀 지져내 주셨다.
들기름 바른 무쇠 솥뚜껑에서 부쳐낸 무전 또한 들기름의 고소한 맛뿐 특별한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그나마 살아가면서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지며
무 맛은 점점 다른 맛의 영역에 밀려 잊히듯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절실함이 가미된 요리를 하면서
미처 몰랐던 재료 본연의 진미까지 알게 되었다.
살캉거리다 씹을수록 물컹해지는 순종적인 식감.
개운한 듯 담백한 맛. 마지막에야 여운처럼 내놓는 순박한 듯 건강한 맛.
나이 탓일까. 나는 요즘 돌솥에 들기름으로 볶아 지어낸 무밥을 즐겨 먹는다.
잘 여문 가을무를 큼직하게 조각내 고추장이나 된장에 박았다가
채 썰어 갖은양념에 무친 찬을 자주 상에 울린다.
짭조름한 듯 고소한 그 맛 하나로도 식탁 앞이 행복해진다.
삶이 팍팍하다. 나는 사람도 겉과 속이 같은 빛깔로 뭉근한 듯
오래 함께 곁을 지키는 무 맛 같은 사람이 좋다.
아픈 손이 아픈 손을 알아보고 왼손의 상처가 오른손을 일깨우듯,
한 사람 안에서만 맴돌지 않고 우리라는 다정함으로 다가오는
무 맛 같은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를 꿈꾼다.
십대 같은 순수한 맛에서 갈등과 흔들림의 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이순에 참됨과 좋음을 알려준 귀한 맛,
무 맛을 안다는 건 단순함의 미덕과 인생의 진미를 안다는 것,
인생의 숱한 맛, 그 너머의 맛을 안다는 것이고 조금은 외롭다는 것이기도 하리.
*윤혜주의 <무 맛을 안다는 것>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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