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식물이 있기 전의 이야기이다. 나는 여러 관계에서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여러 사람에게 거듭 잘못했고 자연히 다양하고도 많은 미움과 질타를 받곤 했다.
모든 사람이 각기 제멋대로 다양하듯 사람으로부터 받는 미움의 모양 역시 각양각색이라
모든 상처는 익숙해질 틈 없이 언제나 새로이 아프다.
딱 떨어지는 한마디 말로 변명하기 어려운 것이
어떤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이면서
때론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이유를 들어
타인에 대한 미움을 공공연히 내지르는 것이 인간이다.
방 안에 푸른 식물이 없던 시기였다.
대신 나 자신이 노랗게 말라버린 제라늄 잎사귀 같던 날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도 벅찼던지라 타인에겐 도무지 관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만 있어도 아마존 밀림의 야생식물 줄기처럼
수 갈래로 분열하며 무섭게 내면의 영토를 잠식해가는
새롭고 낯설며 거친 자아와 더불어 매번 부딪히고 다투었다.
나는 나에게 묻고 따지고 화를 내고 비웃고 야단치기를 거듭하면서 스스로를 집요히 미워했다.
그러다 마음의 상흔을 그대로 안은 채 밖에 나와 사람을 만나면
또 스스로에게 하던 버릇대로 온 힘을 다해 타자를 미워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이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의 식물들은 단순하고 집요하게 자기의 삶, 실존만을 추구하며,
따라서 타인의 삶에 어설픈 훈수를 두는 무의미한 일을 하지 않는다.
선인장과 마르게리타 꽃과 베고니아 화분은 서로를 향하여
어여쁘다느니 힘을 내라느니 혹은 너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느니 하며
쑥덕대느라 공연히 마주 보지 않는다. 다만 생명의 빛을 내려주는 저 태양만을 바라볼 뿐.
식물은 존재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러기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물과 흙과 빛이면 충분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좇으며 외적으로는 생존에,
내면적으로는 자아에 집중한다. 그에 비하면 아직 덜 진화한 인간은
공공연히 이타적 삶의 환상을 떠들어대며 의미 없이 타인의 영역을 기웃거리느라
실존의 한계를 잊어버리곤 하지 않았던가. 식물은 알고 있다.
싹 트기 전엔 흙이었을 뿐, 그리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인 것을.
*김은진의 <동거식물>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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