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명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맞닥뜨린 정체불명의 소음은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일단 귀로 들어오는 바깥소리가 아니었다.
귓속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온전한 귀의 소리, 귀의 반란이었다.
왼쪽 귀에 둥지를 튼 이명은 정말 고약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리며 들볶았다.
어떤 때는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머릿속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
날카롭다가 가늘어지기도 하고 가까웠다가 멀어지기도 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손으로 귀를 감싸기도 하고,
귓바퀴를 힘껏 잡아당겨도 보았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고백하건대, 그동안 나는 고통보다는 두려움 속에서 떨었다.
이명이 난청까지 불러올까봐 노심초사했다. 최근에야 알았다.
난청이 이명을 부를 확률이 높지, 이명 때문에 난청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다행히 아직 청력에 이상은 없다.
어쨌든 이명의 속성은 단숨에 승부를 가르는 쪽이 아니라, 어르고 달래야 하는 증상이다.
나는 음악치료법을 택했다. 그것도 직접 전문가에 따르지 않고,
나름 자가치료법을 개발했다고나 할까. 일명 '잠자리 이명치료법'이다.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음악을 가슴에서 재탄생시키면 되는 일이다.
가슴에서 울리는 음악에 어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명의 불협화음이 화음에 묻히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감기는 눈이라니.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에 쏟아지는 폭포수 이명을 가슴의 음악으로 잠재우는 방법이다.
이 나이에 내가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나이 들어 병고가 따름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질병에 비한다면, 이명이야말로 소소한 귀염둥이 반려병이다.
고마운 십년지기다. 어쩌면 이명은 가장 최적기에 내 손을 잡은,
시들어가는 내 영혼을 일깨우는 소리일는지도 모른다.
그 누가 있어 소리의 강약까지 조율하면서 무언의 알림장을 보내주는가.
‘좀 지친 상태네. 하던 일 내려놓고 쉬어야 해. 끼니를 거르면
안 돼. 단백질과 비타민이 부족한데?’
이명은 내 몸을 샅샅이 살펴보는 친절한 건강지킴이다.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가 가슴 깊이 울려퍼진다.
이명이 '봄의 노래'로 치환되었다. 나는 차츰차츰 고요를 느낀다.
눈꺼풀이 묵직하게 내려온다.
문득 고요 속으로 색다른, 환상적인 소리가 스며든다.
*김경의 <이명의 시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