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저희 부모님이 결혼하신지 40여년이 흘렀네요
도시에서 태어나 손에 물한번 안묻혔던 어머니가 시골 2남 4녀중 장남인 아버지와의 결혼으로
5명의 동생들과 시부모님, 시할머니와 함께 살며 집안살림과 농사일을 병행하셨는데
식구가 많다보니 세탁기 없는 시골에서 욕조만한 크기의 두다라를 매일 찬물로 손빨래 해야했고 보일러가 없던 집에서 매일 나무와 불쏘시개를 이산 저산 다니며 주워와서는 아궁이에 보일러와 가스렌지대신 나무를 태우며 끼니마다 10인분 밥을 하셨다고 합니다
또 농사일이 많은 집이라 논에서는 쌀농사를 밭에서는 하우스에 오이농사를 지으시고 오이가 익으면 짊어지고 갈수있을 만큼 이고는 한시간을 버스를 타고 아파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며 팔으셨다고 합니다
한해 지은 농사로 동생을 한명씩 결혼시키다 보니 막상 우리집은 쓸 돈이 없어 저희 남매는 남이 물려준 옷만 입고 저와 오빠가 중학생이 될때까지 생활비라고는 고작 한달에 10만원이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저희는 학교다닐때 용돈과 차비가 모자라 1시간 가량을 걸어 학교를 가야만 했습니다
이런 저희를 보며 어머니는 늘
"내가 너희 엄마라 미안하다. 다른 엄마들은 자식들 먹고 싶은거 다 사주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구나. 돈많은 집에 태어났으면 이런고생안했을텐데.."
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부모님이 힘들게 사시는걸 알아서인지 우리 남매는 말썽한번 부리지 않고 고집도 사춘기도 없이 어느새 30이 훌쩍 넘었습니다
없는것 투성인 시골이라 반찬이라고는 밭에서 나는 나물뿐이고 김장철이면 500포기씩 김장을 해 한해를 났는데 지금은 시동생들이 결혼을 해 식구가 느니 김장양도 늘어 배추2,000포기를 심었다가 1,000포기는 나눠주고 1,000포기김장을 해서 시동생과 친정식구들을 나눠주시는데 정작 본인은 옛날생각에 지겹다며 김장김치는 드시지도 않는 우리 어머니
"나는 아직도 시집왔던 23살인것 같은데 세상은 멋대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날 58살 이라고하는구나"
우리의 시간은 이렇게 쉽게 흘러가는데 어머니의 시간은 아직도 시집왔을때에 머물러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타까워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우리 남매가 돈을 모아 웨딩드레스를 입혀 드렸습니다
오래되어 바래버린 결혼식 사진 한장보다 걸어놓고 볼수 있는 커다란 액자속에 화려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 이보다 더 뿌듯한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사진촬영에 초대된 하객은 없었지만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부모라 미안하다 하지만 저는 저희 부모님을 만나게 해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인연 - 이선희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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